일상다반사

그가 뛰는 이유가 궁금하다.

웅이 엄마랍니다~ 2022. 3. 16.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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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가 오늘도 뛴다 '

그는 뛴다. 언제나 뛴다. 그는 뛰어야만 한다.

강박관념의 사전적 정의는 마음속에서 떨쳐 버리려 해도 떠나지 아니하는 억눌린 생각이다. 어떤 절실함 있는 사정이 있다면 그걸 이해할 수 있을까.

6년 전 서울로 발령을 받았다. 찬바람이 씽씽 부는 날 아침, 어제저녁 아내가 챙겨준 장갑을 놓고 왔다. 깜빡한 걸 후회하며 지하철을 올라와 걸었다. 멀리서 뛰는 사람의 뒷모습이 보였다. 등번호 21번이 눈에 선명히 들어왔다. 오토바이 한 대가 '쌩' 하고 그를 단번에 따라잡고 어디론가 달려갔다. '이 추위에 반팔에 반바지군. 안 추운가...'  

2층 사무실에 도착했다. 뜨거운 커피 한 잔에 몸을 녹였다. 직원들과 인사를 나눴다. 작업장 계단으로 내려가는데 한 사내가 숨을 헐떡이며 올라오는 것이 아닌가. 그가 나를 '힐끗'보더니 재빨리 지나간다. 돌아보자 까만색 등번호가 보인다. '어... 아까 그 21번?'

그는 내가 새로 발령받은 직장의 계장님이었다. 참 대단하다 싶었다. 단단한 몸에 군살이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장딴지는 무슨 운동선수를 보는 듯했다. 그의 나이를 알았을 때 깜짝 놀랐다. 정년을 1년 앞둔 그는 40대 후반쯤으로 보였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일찍 출근해 그는 직장 앞 공원 주변을 달렸다.

분당 120회의 심박동과 함께 30분 이상 운동을 하면 우리 몸에 행복한 엔도르핀이 나온다고 한다. 달리기나 자전거를 타고 얼마가 지나면 힘들어야 하는데 오히려 개운한 느낌이 든다. 이 기분 좋은 감정 때문에 계속 운동을 하게 된다.


처음에는 그가 운동 중독인가 생각했지만 이유가 있었다. 팀별 회의를 마친 후 계장님과 차 한잔을 했다. '이참이다 ' 싶어서 물어봤다.

''1년 중 한 번쯤은 쉴 수도 있는데 365일을 달리시는 것 같아요.'' 그가 빙그레 웃었다.

''달리기를 시작한 지 20년 동안 감기 한번 안 걸렸다고 하면 거짓말 같지 않아? 만일 몸이 좀 이상하다 싶으면 열댓 바퀴 뛰지. 그러면 언제 그랬냐는 듯 금방 좋아졌어. ''

그는 찢어지게 가난했다. 오죽했으면 부모가 고아원에 맡겼을까. 굶는 것보다 차라리 삼시세끼 밥 먹는 곳이 낳겠다 싶어 내린 결정이 아니었을까.
솔직히 나는 그 정도의 가난을 경험하지 않았다.
그가 뛰는 이유를 듣고 그의 절실함을 온전히 느낄 수 없었지만 이해는 됐다.

"가진 게 없으니까 뛰는 거야. ''

아버지가 그런 비슷한 말씀을 언젠가 어린 내게 하신 것 같다. 몸이라도 건강해야 식구들 먹여 살릴 수 있다는 의미였다. 80 평생 아버지가 병원에 가시는 모습을 딱 두 번 봤다. 아버지는 지금도 꾸준히 새벽 운동을 하신다.

그는 형편이 어려워 검정고시를 봤다. 삶이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았다. 한 직장에서 32년을 일했다. 집안 사정상 퇴직을 해도 일을 계속해야만 한다고 했다.

베이비 부머의 은퇴 현실이 녹록하지 않다. 위로는 부모님, 아래로는 자식들 취업, 결혼자금을 걱정한다.  퇴직후 여유가 없지만 건강관리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가진 게 없어서' 건강한 몸을 유지해야 한다는 말이 현실적으로 와 닿았다. 정년퇴직을 한 그는 택배 회사에 재취업을 했고 분류 작업을 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건강 나이를 10년쯤 앞당긴 그는 지금 어디쯤 달리고 있을까. 이른 아침 택배회사 주변에 등번호 21번, 반팔 티셔츠를 입고 달리는 그가 보인다면 아는 체해주시기를 바란다.

그가 뛴다. 도시의 새벽이 밝아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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