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살수대첩에서 수나라 병사 30만은 정말 익사했을까?

웅이 엄마랍니다~ 2022. 1. 13.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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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주제의 한국사속, 숨은 이야기들을 쓰고 있습니다. 지식과 정보, 두 마리 토끼를 잡으셔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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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술 읽히는 한국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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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기출문제, 고구려 을지문덕의 살수대첩 그 진실은?

< 이런 분께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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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에 나오는 내용 요약 >

*역사적 사실과 허구의 경계선, 과연 살수대첩으로 수나라의 30만 대군이 수장되었을까..

*살수는 오늘날 북한의 청천강을 말한다.

*113만으로 출발한 수나라는 대군을 유지하기 위한 한계가 있었다. 30만의 별동대를 만들어 평양성을 공격하려 했지만 병사 1인당 50kg의 보급품을 운반하게 만들어 심지어 행군 도중 몰래 땅에 파묻는 일까지 일어났다.

*둑을 터트려 도하하는 수나라의 군사들을 몰살시켰다는 기록은 없다. 우리가 어릴 적부터 알고 있던 사실은 신채호의 조선상고사에서 나온다.

*지나친 역사 왜곡은 잘못된 역사인식을 갖게 하므로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시각이 필요하다.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서 >

612년, 그러니까 2022년에서 거꾸로 올라가 1410년 전에 있었던 고구려와 수나라와의 전쟁을 상상해봅니다.

살수대첩 하면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저는 이렇습니다. ' 어떤 장군이 흐르는 강물을 막은 후 기다렸다가 한꺼번에 둑을 터트려 수많은 적군을 몰살시켰다. ' 어릴 적 역사 만화에서 또는 을지문덕 장군의 전기를 읽은 어렴풋한 기억이 있습니다.

정말 놀라운 전술이었죠. 아군보다 엄청 더 많은 적군을 일거에 쓸어 버리다니 의심하지 않고 책에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어른이 된 이후 언젠가부터 역사적 진실과 허구에 대해 생각하게 되더군요. 과연 일반적으로 알려진 이야기들이 과연 진실일까.. 아니, 무슨 근거로 그렇게 썼을까..

수나라의 30만 대군, 이 어마어마한 병력을 물로 거의 전멸시킨다는 것이 어떻게 가능했는지, 진실인지, 거짓인지에 대한 궁금함으로 출발합니다.

이 문제는 일반적인 상식으로도 충분히 풀 수 있는 가벼운 문제다. 살수라는 지명이 있으니 정답은 당연히 을지문덕 장군이다.

살수란 낱말을 어학사전으로 풀이해본다.

1. 살수 (撒水) 뿌릴 : 살, 물 : 수
>>> 물을 흩어서 뿌림
2. 살수 (薩水) 보살 : 살, 물 : 수
>>> 청천강의 옛 이름

물을 뿌렸다고 해서 1번일 것 같지 살수대첩( 612 )에서는 2번의 한자를 쓴다. 오늘날 북한의 청천강에서 일어난 전투를 말한다. 청천강은 평안북도 서남부를 흐르는 강이다. 총길이는 199km라 한다.

589년, 중국은 수나라가 전국 통일을 이룬다. 힘이 세진 수나라는 요서지방으로 눈을 돌려 고구려와 충돌한다. 당시 수나라가 고구려와 전쟁을 하기 위해 모은 군사들은 113만 3800명이었고 군대를 정비한 후 출발하는데 40일이나 걸렸다.

2021년을 기준으로 현재 우리나라의 군인 수는 60만 명이라 하니 113만 명의 병력은 실로 어마어마한 숫자라 할 수 있다. 더군다나 그 많은 병사들의 전투력을 유지하기 위한 군량을 운반하기 위해 많은 인력이 동원되었다고 한다.

113만의 대군으로 출발했으나 고구려의 저항은 만만치 않았다. 많은 병력과 식량 등이 소실되면서 수의 군대는 요동성 앞에 이르렀다. 가장 큰 문제는 겨울이라는 계절이었다.

요동성 함락은 쉽지 않았다. 추위는 병사들의 사기를 떨어뜨렸고 수나라의 군대는 이미 함락한 성들마저 포기하고 본토로 회귀해야만 했다.

수는 이 난국을 해결하기 위해 결국 별동대 30만을 만들어 몸집을 가볍게 만든 후 평양성을 향해 진격했다. 그러나 또 다른 문제가 있었다. 병사들에게 너무 과중한 무게의 보급품을 운반하게 했다. 1인당 약 50kg 정도였다고 한다. 지칠 대로 지친 병사들은 군수품을 몰래 버리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정예병 30만 대군은 머릿 수 만 많을 뿐 피로와 굶주림으로 지쳐 고구려와 전투를 하기엔 병사들의 피로감은 극에 달해 있었다. 이를 간파한 고구려는 치고 빠지는 전술로 수의 군대를 괴롭혔다. 마침내 수나라는 후퇴를 거듭하다가 살수(청천강)에 도달했다. 바로 여기서 둑을 막아 물을 모은 후 한꺼번에 터트려 강을 건너는 적군을 수장시킨 살수대첩이 일어난다.


정말 그 일이 가능했을까? 앞서 소개한 살수 (薩水) >>청천강으로 가보자. 30만의 대군 중 살아남은 병사가 2700명, 이곳에서 거의 29만여 명이 죽었다는 이야기인데 우선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단순히 강의 폭을 생각해보자 청천강은 길이가 199km라 하지만 후퇴하는 수의 병사들이 한꺼번에 강을 건너갈 수 없을뿐더러 그 많은 병력을 수장시키려면 엄청난 양의 물이 일시에 밀려와야 하는데 오늘날도 힘든 기술을 그 당시에 썼다는 게 말이 되지 않는다.

KBS의 역사 저널 ' 그날 ' 에서는 살수대첩의 신빙성이 떨어지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1. 둑 건설은 당시 기술로는 쉽지 않았다.
2. 제시간에 타이밍을 맞춰 둑을 터트리기 위한 통신이 발달하지 않았다.
3. 한 번에 둑을 무너뜨리기 위한 폭약도 발명되지 않았던 시대였다.

그러면 왜 우리는 문서의 기록과 과학적 근거가 없는 살수대첩에 대한 역사적 사실을 잘못 알고 있을까.. 그 이유는 독립 운동가이며 사학자였던 신채호의 조선상고사, 제2장 살수 전쟁에서 찾을 수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살수대첩의 일화가 여기에서 나온다.

신채호가 저술한 조선 상고사는 학술연구서 성격을 띤 단군에서 백제 시대까지의 역사를 담은 책이다. 이 책은 기존의 역사 인식과는 달리 민족주의 사상이 한쪽으로 치우쳐 살수대첩의 일화 같은 실증되지 않은 부분이 있다고 한다.

체력이 바닥나고 군량이 부족해서 배고픔에 허덕이던 30만의 대군은 아무리 그 수가 많다고 해도 사기가 떨어지고 전열이 무너지면 오합지졸이 된다.

삼국사기의 기록에 의하면 수나라의 후퇴하는 병력 앞에 강이 있고 을지문덕이 후방을 공격했으니 대패를 당할 수밖에 없었다.

<마무리 글>

역사 소설이나 드라마로 제작된 역사물들을 볼 때면 문학적 허구와 역사적 사실의 경계에 대해 생각해 볼 때가 있다. 지나친 왜곡은 잘못된 역사인식을 심어 줄 수 있다. 나름 객관적인 합리성과 비판적인 시각이 필요하다.

요즘 방영되는 JTBC 드라마 설강화에 대한 역사왜곡 논란이 이슈다. 뉴시스 기사에 의하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드라마 설강화 방영 중지 청원' 글은 동의 수 35만 명이 넘었다고 한다.

드라마의 극적인 재미를 위한 작가의 상상력도 좋지만 증명된 사실이 아닌 왜곡은 역사의식의 판단을 혼란스럽게 만들 수도 있다.

이글의 키워드는 고구려, 을지문덕, 살수대첩, 신채호 조선상고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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