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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15

너에게 띄우는 편지

너에게 띄우는 편지 / 혜원 전진옥 너는 언제나 싱그러운 나무처럼 늘 푸르렀으면 좋겠다 구름 낀 날이어도 비가 내리는 날이어도 세찬 바람이 불더라도 의연히 서있는 사철 푸른 나무라면 더없이 좋겠지 바람이 흔들고 갈지라도 내일의 과목으로 우뚝 서 있을 테니 [ 시 해설 / 임세규 ] 뭔가 맑은 느낌으로 누군가를 응원하는 시로군요. 싱그러운 나무, 사철 푸른 나무, 내일의 과목은 시인이 말하는 ' 너 ' 즉 너에 대한 바람입니다. 세상사 어찌 좋은 날만 있겠습니까.. 구름과 비와 세찬 바람을 맞으면서 묵묵히 걸어가는 거죠. 때로는 희망이 없을 것 같은 실패와 절망이 우리를 흔들고 갈지라도 내일의 과목이 있어 오늘을 살아갈 수 있지요. TV를 보다가 배우 박보영이 하는 이야기를 듣고 작은 울림이 왔습니다. 연..

일상다반사 2022.03.10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행복 / 유치환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 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행길을 향한 문으로 숱한 사람들이 제각기 한 가지씩 생각에 족한 얼굴로 와선 총총히 우표를 사고 전보지를 받고 먼 고향으로 또는 그리운 사람께로 슬프고 즐겁고 다정한 사연들을 보내나니 세상의 고달픈 바람결에 시달리고 나부끼어 더욱더 의지 삼고 피고 헝클어진 인정의 꽃 밭에서 너와 나의 애틋한 연분도 한 망울 연연한 진홍빛 양귀비꽃인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 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 시 해설 ] / 임..

일상다반사 2022.03.09

봄에 읽을 좋은시

봄날 / 강경숙 봄 내린 뜰 메주를 찬찬히 펼쳐 놓으시는 할머니 콤콤한 몸이 햇볕을 쬐는 동안 흙 배긴 항아리를 짚으로 말갛게 닦으신다 오금 한 번씩 펼 때마다 햇볕이 블룩, 장독마다 햇살이 튄다 항아리 안에 푸른 하늘이 동그랗게 먼저 들어앉고 볕이 잘 들어야 장맛이 좋은 겨 할머니의 머리칼이 은실로 반짝인다 개집 속에 개밥 그릇도 볕 잘 드는 곳으로 나간다 햇볕을 따라 나간 누렁이 햇살에 버무려진 밥을 참 맛나게 먹는 따스한 바람과 햇발이 마당 그득 널린 날. [ 시 해설 ] / 임세규 태어나고 자란 곳이 서울이지만 제게도 어린 시절 시골의 모습을 간직한 추억이 있습니다. 아버지 고향인 충남 삽교는 제 유년의 고향이기도 합니다. 방학 때 내려가면 할머니는 막내 손주 손을 잡아 주시며 반갑게 맞아주셨죠...

일상다반사 2022.03.08

누가 그랬다 / 이석희

누가 그랬다 / 이석희 누가 그랬다 풀잎에도 상처가 있고 꽃잎에도 상처가 있다고 가끔은 이성과 냉정 사이 미숙한 감정이 터질 것 같아 가슴 조일 때도 있고 감추어둔 감성이 하찮은 갈등에 가파른 계단을 오르내리며 가쁜 숨을 쉬기도 한다 특별한 조화의 완벽한 인생 화려한 미래 막연한 동경 누가 그랬다 상처가 없는 사람은 없다 그저 덜 아픈 사람이 더 아픈 사람을 안아주는 거다 [ 시 해설 ] / 임세규 남들은 다 잘 살고, 다 행복 한 것처럼 보여도 막상 들어가 보면 누구나 상처 하나쯤은 있기 마련이죠. 지나고 보니 아무것도 아닌데 그때는 왜 그렇게도 숨 가쁘게 살았는지요. 살다가 숨이 턱까지 차올랐을 때 필요한 건 심호흡..

일상다반사 2022.03.07

네게 하고 싶은 말 / 임세규

네게 하고 싶은 말 / 임세규 맑고 커다란 네 눈망울이 쏟아져 내릴듯한 눈물을 머금은 아이 같아. 수많은 사연이 네 눈망울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여린 멍울을 간직하고 있지. 가끔 혼자서 멍하니 지나온 시간의 흔적을 바라볼 때가 있어. 그때는 왜 그랬을까. 그때는 왜 그래야만 했을까. 총총걸음으로 버스에 오르는 너를 보고 있으면 내 마음 어딘가에도 여린 멍울이 있는 듯 하곤 해. 네 눈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해주고 싶어. 괜찮아.... 네가 사는 삶도 나쁘지 않아. 힘이 들면 언제든 귀 기울이고 공감 해주는 친구가 항상 가까운 곳에 있어.

일상다반사 2022.03.05

낡고 오래된 기타 / 임세규

낡고 오래된 기타 / 임세규 내게는 낡고 오래된 기타가 있다 처음 기타를 샀을 때의 설렘은 두 딸아이가 태어났을 때의 설렘과 같았다 참 희한한 일이 있다 때로는 방치에 가깝게 먼지를 뒤집어쓰고 오랜 시간 제 몸 울려 주기를 기다렸던 낡고 오래된 기타는 얼마 전 새로 산 기타보다 울림이 더 좋다 그는 오래된 고목처럼 항상 내 곁에서 묵묵히 나를 지켜 주었다 그는 아내와의 첫 만남을 기억하고 있고 큰 딸아이의 첫 입학을 기억하고 있으며 둘째 딸아이의 첫돌을 기억하고 있다 그는 아직 십여 년이 남은 나의 정년을 바라볼 것이며 큰 딸아이의 결혼을 기억할 것이며 둘째 딸아이의 대학 졸업을 기억할 것이다 그는 내 인생의 첫 번째 동반자인 아내 다음으로 두 번째 동반자이다.

교육 2022.03.04

반갑다, 봄 / 임세규

반갑다, 봄 / 임세규 잊은 줄 알았는데, 영영 오지 않을 줄 알았는데, 걷다가 걷다가 길가 풀숲 속에 햇빛 쬐는 3월을 보았지 반갑다, 봄. [ 시 해설 ] 2월의 중순이 넘었는데도 여전히 영하 10도를 넘나드는 강추위가 있었지요. 제 마음이 간사해서 그런지 추우면 언제 여름 오냐고, 더우면 언제 겨울 오냐고 이랬다, 저랬다 합니다. 봄은 참 걷기 좋은 계절입니다. 길가 풀숲에 작은 손 내민 새싹을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어도 마음이 한결 맑아지는 듯하네요. 언제 오나, 언제 오나 했는데 드디어 왔군요. 기분 좋은 미풍의 끝을 따라 3월이 왔습니다.

교육 2022.03.04

향기 / 임세규

향기 / 임세규 잿빛 하늘 회색빛 구름 금방이라도 비가 내릴 것 같다. 아스팔트 위로 빗줄기가 '후두두 ' 내려온다. 땅을 적시며 올라오는 봄비 그 향기를 맡아본 적이 있는가... 젊은날 잠시 군인이 되었을 때 한여름의 사격장 k2 소총 끝에 달려있던 화약의 향기. 사십 킬로미터 완전군장의 행군 속에 잠시 쉬어가라며 제 그늘을 내어주며 시원한 바람을 불러주던 플라타너스의 향기. 어스름한 저녁 무렵 당신과 함께 산책 하며 바라본 한강 둔치에 하늘거리며 춤추듯 이제는 가을이라 알려주는 코스모스 향기. 누군가에게 소식을 전해야만 할 것 같은 첫눈 오던 날 눈이 온다며 전화기 건너편 설레인 당신의 향기. 삶에는 그 흔한 향기가 있음에도 우리는 그 소박한 향기를 무심히 흘려 보내고 있지 않은가...

교육 2022.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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